우리나라 만화 중에서 최고의 만화를 꼽아보라고 한다면 아마 있을 가능성이 높죠.
바로 양경일 작가님의 '신암행어사'인데요.
전 개인적으로 양경일님이 얼렁 '소마신화전기'부터 완결 내줬으면 하는데, 무리겠죠.
아무튼 '신암행어사'는 우리나라의 전설 등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새롭게 그려낸 작품을 중간중간 섞어서 정말 명작으로 완성시켰죠.
결말이 아쉽긴 하지만...
이 작품에서 나온 '홍길동',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에 등장합니다.
비록 국어공부에 관심이 없어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작품입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
그런 그가 탐관오리의 부정과 패악에 맞서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소설 속 단체 '활.빈.당'
활빈당과 홍길동은 여러 작품에서 등장합니다. 그 이유는 어찌 보면 빈민 구제와
탐관오리의 부정과 패악에 맞서는 인물을 현대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과연 활빈당이라는 의적은 우리의 상상에서만 존재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닙니다. 현재에도 힘든 현실을 타파하는 영웅적 인물상을 꿈꾸듯이
과거에도 그러했고, 실제로 사람들이 모여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단체의 이름이 바로 '활빈당'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소설 속에서만
존재할 수 없었던 그들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그들은 누구인지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활빈당의 등장>
현재 남아있는 옛 기록들 특히 1900년대 신문을 찾아보면 제가 찾은 기록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900년 3월 20일 '황성신문'에 실린 기사였습니다.
위 신문 기사의 원문입니다.
당시 신문은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쓰는 '국한 체'로 쓰여 저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간단히 해석해보면 이렇습니다.
"[남도활빈당] 홍주연산등지의 내신을 접한 근일에 소위 활빈당이라 하는 사람이 총대를 찬 말을 타고 부민가에 난입하야 때론 돈을 때론 곡식을 찾아 빈민에게 나누어주는데 해당 당원의 수가 수천명이라 하더라."
위 기사에 나온 내용처럼 '활빈당'이라 자칭하는 그들은 소설 속 '활빈당'처럼 빈민을 구제하고
탐관오리의 부정과 부패를 고발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활동들과 함께 '활빈당 선언문'을 발표하고
그 외에도 각종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런 선언문에 따르면 그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3가지였습니다.
첫째, 자연 평등의 실현
둘째, 사회 빈부 격차의 타파
셋째, 국가의 혁신
위 세 가지를 목표로 삼은 '활빈당'은 그들을 잡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도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소속된 인원은 몇 명인지 전혀 알려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1904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당시 신문에는 그들의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활발히 활동을 하던 '활빈당'은 1905년 '을사늑약'의 채결을 보고 의병활동에 흡수되어
의병활동에 가담했다는 기록을 끝으로 더 이상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활빈당은?>
1900년대 활빈당이 더 이상 소설 속에만 의 존재가 아닌 현실에 등장해야 했을 정도로
당시의 빈부격차와 신분 차별은 심각했다는 것을 우리는 많은 자료들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2016년에도 빈부의 격차는 적지 않고 이러한 빈부의 차이로 인해
생겨나는 흔히 말하는 '수저 등급'으로 인한 격차는 적지 않은데요.
위 그래프처럼 현재 우리나라의 빈부격차도 무시할 수준은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대에 빈부격차는 우리 사회에도 과거 1900년대에 등장했던
'활빈당'의 재림을 꿈꾸며 이러한 차별과 격차를 타파하는 그런 날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만 갑니다.
언젠가는 이러한 격차가 줄어들어 '활빈당'이 그저 소설 속에서만 공상 속에서만 존재해도 문제없는
그러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꿈꾸며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