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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5th Episode - 일흔두 글자

읽은책들

by CoHobby 2020. 4. 1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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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및 리뷰는 주관적 의견입니다.

사람마다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드디어 이 책도 반을 넘어서 마지막 에피소드를 향해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감상평을 적어볼 에피소드의 제목은 '일흔두 글자'입니다.

작가가 다시금 인문학과 관련된 주제로 글을 쓴 것일까요?

과연 어떤 내용인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줄거리(Story) 」

작품의 시작에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식이라는 언급나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1837년에 즉위했으므로 작품 시대상도 아마 19세기로 보여집니다.

72글자의 이름을 적어넣으면 해당 이름에 따라

작동하는 골렘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 작품 속 세계관에서

그 '이름'을 연구하는 '명명학자'인 '로버트 스트래튼'이 주인공입니다.

어려서부터 명명학과 호문쿨루스에 관심이 많았던 '스트래튼'은

성인이 되어서 자신이 꿈꿔왔던 이상을 위해서 명명학을 연구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과

사회적 갈등들을 목격하게 되면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데...


「 특징(Feature) 」

이 작품은 4번째 에피소드였던 '네 인생의 이야기'처럼 어찌보면

이과적인 내용과 문과적인 내용이 같이 들어있는데요.

뭔가 아쉽게도 섞였다기 보다는 같이 둔 느낌이랄까요?

따로 논다고 하는게 가장 적합한 설명 같은데요.

아무튼 그런 작품인데, 이 작품만의 특징들을 간단히 짚어가면서 알아보겠습니다.

《 72글자의 '이름' 

이 작품의 중심 소재 중 하나는 바로 '이름'입니다.

작품의 첫 장면에서부터 이름에 따라서 행동을 하는 골렘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름은 특정 행동을 할 수 있게 한다'라는 것과

'이름에 맞는 소재의 몸이 필요하다'는 것도 작품에 서술되죠.

이런 것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이 작품을 떠올렸어요.

바로 '네이버 웹툰'에 연재 중인 '쿠베라'라는 작품인데요.

이 작품 역시도 '이름'이라는 소재가 꽤나 중요하게 등장하죠.

그래서 이름과 역할에 관련된 무언가 철학적인게 있는 것인가 의심이 생길정도에요.

아무튼 이 '이름'은 처음에는 그냥 픽션이기 때문에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작품을 계속 읽었는데요.

계속 보면 볼 수록 이 '이름'이라는 것이 우리가 만드는 프로그램의 '코드'와 비슷하다고 느껴졌어요.

우리가 만드는 프로그램의 '코드'들 역시도 어떤 역할을 하는 코드를

합치고 또는 분리해가면서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는데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이름'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이름'을 찾아내거나

기존에 있던 '이름'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는 부분이 특히나 그랬죠.

작가는 따로 어떤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이름'이 들어가는 골렘(자동인형)은 결국 인간이 만드는 기계로 볼 수 있고,

작중에 나오는 자신을 복제하는 골렘(자동인형)은 결국

기계가 기계를 만드는 그러한 모습을 그려낸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전성설에 기반한 '호문쿨루스' 

저는 '호문쿨루스'라고 하면 이 이미지가 가장 강하게 떠오르는데요.

이 작품에서는 '전성설'에 기반해서 '호문쿨루스'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전성설'이란 간단히 말하면 인간이 이미 '정자' 혹은 '난자'에서부터

현재의 형상이 완성되어 있었다는 학설인데요.

이 작품에서는 인간은 '정자' 속에서 이미 형태가 완성되어 있었고,

'난자' 속에 있는 이름이 형태에 세겨지면서

인간으로 태어나고 활동하며 살아간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난자' 속 이름에 따라서 어느정도 인간의 행동이 규정된다는 점이

영화 '가타카'를 떠올리게도 하는데요.

이 작품에서는 이 소재를 통해서 인류가 앞으로 몇 세대 후에는 멸종한다는 것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해결하려고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름'이라는 소재에 비해서 '호문쿨루스'는 약했다고 할까요?

작가가 그냥 써보고 싶어서 쓴 것 같기는한데,

'이름'이라는 소재에 비해서 중요도는 조금 낮았다고 생각되네요.

《 두 개의 큰 대립 

마지막으로 말할 특징으로 '대립'이 있습니다.

모든 소설은 어느정도 '사건'이 필요한데요.

이 작품에서는 '대립'이 그 '사건' 역할을 해줬습니다.

다만, 1개가 아닌 크게 2개의 대립이 존재했는데요.

하나는 자가 복제가 가능한 골렘을 만들려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대립.

다른 하나는 인류의 번성을 제한하지 않는 측과 제한하려는 측의 대립.

이렇게 크게 2개의 대립이 존재했습니다.

첫 번째는 위에서 제가 얘기했던 것처럼 '이름'을 프로그램의 '코드'와 동일시하면

4차 산업혁명의 발전으로 AI의 발전이 이뤄지면서

AI의 발전이 인류에게 도움이 될 것이니 걱정이 없다는 측과

AI의 무분별한 발전은 경계해야한다는 측의 대립으로 보여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대립은 다른 문학작품에서도 많이 등장한 소재라서 낯설지 않아요.

대표적으로 영화 '아이로봇'이 있겠는데요.

물론 영화에서는 로봇의 권리 측면을 부각했고,

이 소설에서는 로봇을 만드는 기술자들의 생존권을 부각했으니 조금 차이는 있죠.

두 번째 대립은 특정 계급 층을 억압하고 제한하려는 모습이

이전 나치의 '우생학'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고,

기득권 층이 비 기득권 층을 억합하는 그런 사회적 대립으로도 보여졌어요.

이런 것들은 현실을 반영한 여타 작품에서 많이 보여집니다.

그래서 이것도 낯설지 않았던 소재였어요.

다만, 2개의 대립을 한 작품에서 그려내려고 하다보니

아무래도 다루는 대립의 정도가 약간 아쉬웠어요.

좀 더 심도 깊은 대립을 보여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감상평(Comment) 

솔직히 이 작품을 중간까지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나름 흥미롭게 읽고 있었어요.

두 번째 대립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하지만 두 번째 대립이 등장하면서, 기존 대립을 허무하게 끝내버리고

두 번째 대립 역시도 크게 다루지 않고 끝내버려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솔직히 '이름'이라는 소재만으로 글을 썼다면

자기생산이 가능한 골렘을 통한 사회적 대립을 좀 더 심도 깊게 다뤘다면

더 흥미로운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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